인간은 살아가며 여러 가지 경험과 감정을 통해 성장하고 정체성이 형성된다. 사회라는 큰 집단 속에 외로움과 반복되는 현실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때가 있다. 선택의 폭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세상에서 현대인들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감정 중 불안의 감정을 확대시켜 보고 있다.
성인이 되어 경험하게 되는 낯설음에 대한 불안과 사회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불안의 감정을 인물에 투영하고 있다. 정신적인 성숙과는 상관없이 만 19세가 되면 모두에게 성인의 역할이 주어진다. 이는 육체적으로 성숙되고 나이가 차면 모두에게 주어지는 역할이다. 성인이 되어 육체적으로 성장하였지만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자신의 모습에 불안을 느끼게 되고 혼란스러웠다. 어릴 적 생각해왔던 어른의 모습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맞이하게 된 성인의 역할은 미성숙한 자아와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어렸을 적 나 자신과 지금의 나, 미래의 나는 정신적으로 항상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하였고 어른의 역할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와 같은 낯설음에 대한 불안과 사회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의 불안한 내면 감정을 ‘소,녀’에게 투영하여 정신적인 미성숙의 불안에 대한 상징적인 인물상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소,녀’는 본인의 자화상이다. ‘소,녀’를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느꼈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생활하다가 성인이 되었을 때 처음 겪는 경험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정체성의 혼란, 어른이 가져야 될 의무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불안을 느꼈다. 소녀는 사회 속에서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경계인으로의 불안과 소외의 감정을 말하고 있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정신은 미성숙한 상태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어른과 소녀의 경계에서 심리적인 혼란을 겪게 된다. ‘소,녀’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미성숙한 불안에 대한 상징이다. 내면의 감정을 형상화시켜 사회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을 말하고 있다.
작품 속 인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얼굴을 형상화하였다. 현실적이지 않은 얼굴로 이상의 세계에 존재하듯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다. 어른이 된 나는 ‘소,녀’로 변장하고 있다. 소녀의 상징인 단발머리, 주근깨, 홍조로 꾸며 어린 소녀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소,녀’는 어렸을 때의 ‘나’, 혹은 현실이 아닌 이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어른이라는 틀과 정신적인 미성숙 사이의 괴리로 인해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 불안을 과거나 이상향으로 위로 받고자 한다.
미성숙함에 대한 불안의 감정을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나 왜곡된 형태를 통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나타내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라기보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기 위해 특정 인물을 그리지 않고 얼굴을 조합하여 눈·코·입을 변형시켰다. 과장된 눈·코·입을 통해 표정에서 감정이 크게 전달 될 수 있도록 하였고, 모두가 공감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자 했다. 가상의 인물을 통해 자화상의 인물을 상징적인 인물로 확대시켰다.
작품 ‘소,녀’의 제목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소녀에게 뿔을 달아 ‘소’ 의 뿔을 가진 ‘계집 녀’의 두 글자를 합친 합성어의 의미와,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내포시켰다. 소녀의 글자 중간에 콤마(,)를 붙여 실제 지금 소녀가 아님을 나타낸다. 꿈꾸고 바라는 이상향의 상징이다. 불안에 대한 두려움을 잠식시킬 대상으로 뿔을 선택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대상을 뿔이라는 소재를 통해 표현하였다. 초식동물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뿔을 달고 있는 것처럼 뿔은 자아를 심리적으로 보호해주고 의지하게 해줄 수 있는 존재이다. 심리적으로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소재들을 선택하여 화면에 배치시켰다. 어릴 적의 기억들, 인형, 사슴, 목마, 토르소, 꽃봉오리, 잎사귀, 파랑새 등 본인의 기억 속에 남아 안정감을 주거나 이상적인 것들을 떠올렸다. 이 소재들은 ‘소,녀’의 방어기제이다. ‘소,녀’를 직접적으로 지켜주진 않지만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줄 수 있는 존재이다. 방어기제를 통해 불안을 잠식시키고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한다.
그림 속 화면은 소녀를 홀로 배치해 외로움을 극대화 시켰다. 외롭고 불안한 심리를 보여준다. 인물이 정 가운데 있는 구도로 오로지 소녀에게만 집중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정확한 형태의 구분으로 구상적인 인물 표현을 통해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보이고 싶은 소녀 자화상의 모습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밝고 몽환적인 색감으로 꿈꾸는 느낌을 주었다. 자아에 대한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너무 무겁고 심각해지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다. 소녀가 꿈꾸는 이상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보다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과거는 현재보다 더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포장이 되어 기억된다. 어렸을 때 느꼈던 안정적이고 포근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소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표현했다. 이처럼 과거로의 회귀나 미래의 이상으로 탈출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소녀는 위로의 자화상이다. 불안하고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위로이다. 주변의 모습에 물들지 않은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인간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운 모습이라 생각했다. 어른은 현실이고 소녀는 과거와 미래의 이상을 투영한다.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을 과거의 소녀였을 때, 혹은 이상을 꿈꾸는 소녀의 모습을 통해 위로하려 한다. 인물을 통해 내면의 불안을 이끌어내어 감정을 전달하고자 한다. 불안하거나 두려운 감정이 커지면 표정이 없어진다. 감정 표현에 서투른 소녀의 감추어진 표정 속에 눈을 통하여 감정을 표현하고 머물러진 시선에서 불안과 위로의 눈빛을 전달하고자 했다. 정면을 응시하여 감정을 나누고 바라보는 것으로 위로를 전하려 한다.
현실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과거로의 회귀와 미래의 이상향은 현재에 느끼고 있는 불안의 방어기제이다. 소녀의 주변에 존재하는 꽃봉오리와 사슴토르소, 뿔, 파랑새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만들어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을 꿈꾸고 있다. 소재는 방어기제와 현재의 위로를 상징한다. 어른은 현재를, 소녀는 이상을 상징한다. 소녀상을 통해 이상을 투영시키고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을 위로받고자 한다.
자아를 소녀에 투영하여 내면의 감정을 표현한 자화상은 그 누군가의 자화상이 될 수 있다. 소녀는 현대사회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자화상이다. 이는 개인적인 자화상에서 나아가 보편적인 자화상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타인과 공감하며 위로 받는다. 현대인들의 자아상실과 정신적인 불안에 대한 감정적 공감을 통해 흔들리는 현실에 대한 위로를 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