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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박지혜

Park Jihye

"진정으로 살기"

작가노트

우리 주변 길과 들녘에 무성하게 피어있는 풀을 그린다. 특히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아기자기하고 옹기종기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야생의 풀들이었다. 풀과 줄기, 가지마다 군락 진 풀꽃 무리들이 오래도록 시선을 끌게 만들었다. 작은 풀잎들이 모여 무성하게 피어있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생명의 강인함을 느낀다. 그들을 보면 삶을 살아갈 의욕이 유연히 솟아난다.

나는 몇 년 동안 여기저기 부딪히며 가늘어진 정신으로 불안한 삶을 지내왔다. 더하여 희귀난치성 질환인 중증 재생불량빈혈을 겪으며 평범한 삶마저 제한되었다. 물리적, 정신적으로 바닥을 향해 가고 있던 그 당시 적어둔 일기의 글이 있다.

“진정으로 살기”

몇 년 간 내 안에서 나온 가장 희망적인 문장이었다. 이 영향은 당시 투병 중인 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집 앞 산책’에서 만난 작은 풀들의 군락이었다. 작고 미약해 보이는 작은 이파리들이 모여 군락을 이루는 강인한 모습에서 강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들은 마치 나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동시에 오늘을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나에게 그들로 하여금 나의 ‘지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야생의 자연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꼿꼿이 서 있는 그들의 삶, 그 자체가 온전히 나에게 다가왔다.

나에게 ‘현재’란 지금을 사는 것, ‘미래’란 지금처럼 진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미래를 약속하는 것 자체가 불안했던 그때, 옹기종기 모여 시간을 견디고 살아내며 피워내고 확장해 나가는 풀들이 나에게 지속되는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우주 한가운데에 던져진 존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은 그 자체로서 귀한 것이다.

작업의 진행 방식은 여러 층이 겹치며 진행되는데 첫 번째로는 캔버스 위에 대상의 가장 아랫부분의 채색으로 시작된다. 가장 아랫부분이란 표현하고자 하는 풀꽃의 땅, 또는 풀의 짙고 어두운 그림자 부분이 된다. 그 후에 바늘 심의 공병으로 풀꽃의 군락을 피워내듯 물감을 짜내며 그린다. 짜내는 힘의 조절, 물의 농도, 속도, 공병의 남은 물감의 양에 따라 나타나는 다른 양상은 물성의 우연한 효과를 얻는다.

가느다란 선의 요소가 작은 이파리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반복되어 큰 풀의 군락을 이루게 된다. 작은 요소들이 반복되어 보이는 화면의 형상은 정적이거나 동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한 짜내어 그리는 공병의 물감은 주변의 물감과 번지고 섞이며 뭉치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평평한 캔버스에 울퉁불퉁한 표면을 만들며 일정하지 않은 마띠에르가 존재하게 되고 그로 인해 대상을 그리는 터치는 다양성과 의외성을 획득하며 추상적인 공간으로 나아간다. 얽히고설키며 예측되지 않은 물성의 의외성으로 풀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나아간다. 터치의 얇은 표현과 뭉침의 표현이 옹기종기한 군락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다. 채색된 화면 위에 덩어리진 곳부터 풀꽃들을 피워내며 ‘가장 만개한 지금의 삶’을 풀꽃에 은유하여 표현하고자 한다.

약력

2015 동덕여자대학교 회화학과 서양화 전공 석사과정 수료

2013 수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23 Full Bloom, 리갤러리, 서울

2016 감수공간#뿌리, 선+아트스페이스, 서울

2015 감수공간,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그룹전

2023 Next Move ONYOU : Centum 100회전, 경기 안양

2022 Odd Relations : 낯선 관계들, 갤러리41, 서울

2021 SK하이닉스 기후변화 위기극복 Drawing for Green Future, 행복나래-도화아트-갤러리H, 순회전시, 서울

2021 청년작가 초대전, 갤러리 내일,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