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이들이 보기엔 퍽 재미없고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다.
90년생들이 대부분 IMF로 힘들었듯이 내 가정도 이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사이가 멀어졌다. 감수성이 예민해질 나이에 이러한 변화를 겪은 누나는 종종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누나의 방황을 보면서 만약 나까지 문제를 일으키면 정말 어머니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던 나는
홀로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시간과 장소만을 찾아다녔다.
주로 집에서 혼자 노는 걸 즐기던 나는 만화나 영화를 보는 것에 대부분 시간을 썼다.
제법 많은 양의 만화나 영화를 봤었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관통하는 내용은 ‘인류의 진정한 행복과 평화’ 뭐 이런 것이었다.
나는 ‘인류’라는 소재 자체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인류에 대한 실망도 커졌다.
인류의 역사는 어찌 보면 학살의 역사라고 느껴서였다. 요샛말로 ‘인류애 떨어지는’ 사건들에 피로감을 느낀 나는
‘진정한 평화’라는 것을 소망하게 되었다.
대단히 내성적인 나의 성향과 평화라는 원대한 소망이 내 안에서 충돌하면서,
나는 종교의 힘을 빌리거나, 직접 사람들을 모아 어떠한 형태의 운동을 전개하거나 정치적 실천을 하는 것이 아닌,
그저 타인들의 모습을 한 발짝 멀리서 관찰하고, 그 모습들에서
‘이런 세상이 오면 좋겠다.’ 싶어지는 것들을 모아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직접 누군가를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설득하는 것보단, 내 그림을 본 누군가가 공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까?
그것보단 타인을 직접 대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나의 최선이다.
인류의 평화라는 거창한 소망을 가졌으면서 정작 사람들과 닿는 것은 어려워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의 인류애는 조금 삐뚤어졌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피해를 주는 것보다야, 삐뚤어졌을지언정 사랑이 훨씬 좋지 않나?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