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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퍼블릭갤러리(IP: )

작성일 2022.01.27 11: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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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티스트 인터뷰. 정영한 작가



Artist Interview

Artist. 정영한




정영한 작가


Q. 안녕하세요 작가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그리는 화가라는 점에 관해서 스스로 동의한다.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동반한다고 보는데, 하나는 어떤 행위가 어떤 바라는 미치지 못하였을 때 즉 목적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다른 하나는 목표달성과 상관없이 그 행위에 미쳐 있을 때 가능한 것 즉 열정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나의 경우는 전자에 가깝다. 나는 나의 그리기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열심히 그리지 않으면 불안하다. 때문에 내가 열심히 그린다는 사실이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Q.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

나의 작업의 시작은 이미지를 채집하는 행위로부터 출발한다. 과거의 작가들이 현실속의 대상을 회화의 모티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면, 본인의 경우 Lost 이미지, 즉 실체가 없는 이미지들을 수집한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미지, 잡지나 신문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을 무작위로 채집하고 저장해 두었다가 작품을 할 때 화면에 하나씩 하나씩 올리는 과정을 겪는다. 마치 컴퓨터의 디지털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에서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해 투명 창에 이미지를 한 장씩 한 장 씩 중첩하여 여러 장의 레이어를 통해 하나의 화면을 구성해 내는 것처럼, 우선 바다처럼 보이는 배경을 깔고 그 위에 석상이나 대형화된 꽃, 흩날리는 꽃잎, 과일, 신문, 문자 등의 사진 이미지들을 순차적으로 재배치하여 화면을 그려낸다.




Fantasy 2017

Q. 바다 위 정물의 초현실적인 배치가 인상깊다.

자유로운 이미지의 변형을 위해 작품 속에서 돌발적으로 삽입된 꽃이나 신문, 오래된 석상과 같은 정물들은 배경이 되는 바다풍경과 무관한 서로 다른 이미지의 층위를 나타낸다. 이러한 이미지의 층위는 화면에 일종의 레이어(layer)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그려진 대상들 하나하나가 각각의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레이어 구조는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 화면에서의 이미지 창과 관련된다. 물론 디지털이미지의 편집과 변형을 위해 작업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분리하는 이미지 창과는 엄격히 구분되지만, 현대시각매체를 통한 이미지 보기의 방식을 회화라는 고유의 시각매체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작업은 화면을 층위구조로 표현함으로써 실제의 풍경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實在)가 된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실재 이미지보다 체험하는 자연을 제시하는 것으로, 화면을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 공간으로 보이도록 유도한다.





우리時代 神話 (Myth of our time) 162.1X112.1cm oil on canvas 2008년

Q. 프린트라고 해도 믿을 표현기법인 것 같은데.

의도적으로 사진과 흡사하게, 사진 이상으로 잘 그리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작업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붓질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흔히 회화에서 작가의 개성을 파악할 때 붓질이 주요한 요소가 되잖아요. 제 경우에는 화면에서 의도적으로 붓 자국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감정의 절제와 관조자의 시선을 담아냅니다. 따라서 제 작품에서 이미지들은 형상을 ‘그려낸다’라기 보다는 ‘화면에 프린트 한다’는 표현이 적합합니다. 사실 이것은 회화라는, 그리고 그려낸다는 가장 전통적인 매체와 방법을 선택하였지만 오늘날 회화가 지니는 의미는 과거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의 복잡한 기술복제시대 속에서 손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주체로서 창작자 즉, 조작을 가한 주체인 화가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행위 또한 우리시대의 시대성을 위한 의도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우리時代 神話 (Myth of our time) 상세이미지

이것은 단순히 재현적인 일루전의 획득을 위해 붓질의 흔적을 지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에요. 매질의 표층을 매끄럽게 하면서 동시에 형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선도 허물어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덧칠과 중첩으로 구분될 수 있는 중심과 주변의 차이가 모호해지죠. 그리고 대상과 배경의 구분을 제거하여 마치 동시에 전사된 것 같은 효과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회화에서 캔버스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작가에 대한 정보라고 할 수 있는데, 캔버스로부터 오는 정보를 제거하면 투사된 이미지의 정보가 훨씬 강해지죠. 





이미지, 시대의 단상 시리즈 전시전경

Q. 이미지, 시대의 단상 시리즈.

최근에 제작하는 이미지, 時代의 斷想 시리즈의 작품을 살펴보면 사실적이고 재현적인 이미지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몇몇 단어들이 같은 화면 안에 공존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대상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분명한 이미지 위에 굵고 명암이나 색상을 달리하면서 선명한 글씨체로 새겨진, 제목을 가장한 추상적 단어들은 그 뒤에 배경처럼 드러나는 바다, 인형, 인물과 같은 다양한 대상들이 지닌 사물의 속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화면에서 오히려 대조(contrast)를 이룸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이미지는 그 단어에 함축된 의미와 정서를 강조해주고, 단어는 다시 이미지의 사실적 형태와 감각을 더욱 강조해주고 있다. 즉 일종의 상호 촉진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지, 時代의 斷想>이라는 연작을 하면서 본인은 신화로써의 아이콘을 그려내듯 시대의 단상을 가장 잘 함축하는 그러나 우리시대가 쉽게 정의내리지 못하는 가치들을 ‘LOST(찾아주세요)’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작품에서 ‘LOST’는 “Love Our Special Time”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며 항상 우리가 지금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그것이 무엇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갈망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이미지, 時代의 斷想>을 통해서 지금 우리의 삶의 방식에 관계된 다양한 동시대적 감수성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영한 작가

Q. 지금의 정영한 작가가 있기까지.

유년시절 막연하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시점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학창시절에 다른 과목보다 미술이 좋았고 그리는 데 있어서는 또래의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스스로 착각했던 때도 있었다. 사실상 진로가 정해진 것은 미술대학에 진학하면서 부터겠지만 평생 동안 아티스트로 살아가리라 생각한 것은 1996년 첫 개인전 때였다. 당시, 내 이름만으로 또 나의 그림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을 보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와 견주는 모습은 마치 사방에 거울이 놓인 방에서 벌거벗은 나의 몸을 보는 경험과 유사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어디 한 번 그려보자라고 생각한 것. 객기 어린 집념이 지금까지 붓을 놓지 못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정영한 작가 작업실 

Q. 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나는 노력한다. 타고난 재능과 감각이 무엇이었는지 애초부터 몰랐던 것처럼 노력한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가진 기질과 장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른다. 어쩌면 외면해 왔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때문에 나에게 영감(inspiration)이라는 것이 왔을 때 그것을 겸손하고 감사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쏟아 짧지 않은 호흡과 가볍지 않은 숨결을 불어 넣으려고 노력한다. 때문에 시리즈 작품 별로 적어도 5년 이상을 매달린다. 그리고 각각의 시리즈마다 전과 후의 것에 대한 생각들을 중첩시켜 단서를 남겨 놓으려는 시도를 한다. 이렇게 나의 그리기는 예술가의 삶이라는 시리즈 그 자체로 재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노력의 결과물이다. 나의 노력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타인과 비교 할 부분은 못될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예술가로서 나 자신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이다.



Q. 쉬거나 영감을 얻고자 하실 때 무엇을 하시는지.

특별하게 좋아하거나 가리는 취향은 아니지만 클래식 음악과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작품 활동의 영감도 특별히 체험이나 신체활동을 통해 영감을 받지는 않습니다. 작품에서 자연의 풍경들이 많이 등장하기에 여행, 사진촬영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제가 아주 활동적인 사람은 아니어서요. 대부분 작품들은 현재의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다음 작품을 구상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완벽한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리허설을 거치는 것처럼 평상시에도 늘 작업에 대한 생각들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나 광고, 잡지, 인터넷 등 일상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자극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회화를 창작하는 작가로서 장르의 특성상 이미지에 의한 시각 활동에 대한 문제와 관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본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 그리고 보여진다는 것의 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오늘날 우리시대가 갖고 있는 시대적 특성과 현대인들의 시대정신을 회화적으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Q. 좋아하는 크리에이터

배움을 통한 스승보다는 그간 작가로 살아오면서 본인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거나 좋아하는 미술가는 꼽으라고 한다면 로만 오팔카, 볼프강 라이프, 그리고 이우환 이다. 나는 이러한 질문에 망설임 없이 이 세 사람을 언급하는데, 모두 나와 개인적 친분이 없고 미술 이외에는 특별한 공통분모가 없기에 인터뷰어들이 의아해 한다. 이것은 철저하게 나의 취향 문제인 듯하다.



로만 오팔카 작

폴란드 출신 화가 로만 오팔카. 나는 그의 작품이 가진 본질에 대한 집념과 도덕주의적 신념, 그리고 그것을 반영하는 연속적 작업방식을 좋아한다. 나의 그리기에 대한 집착과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분석적 접근방법 또한 이러한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볼프강 라이프 작

볼프강 라이프! 그의 색채표현과 설치방법은 감탄을 자아낸다. 연애를 하다 보면 그냥 좋은 상대가 있듯, 절제된 형식에 초월적 사고를 반영하는 볼프강 라이프의 실험적 작품은 일단 좋다는 그것이 우선이다. 


이우환 작가 선으로부터

그리고 이우환(선생님). 언젠가 나의 에세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항상 동시대와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술가로서 그의 태도를 존경한다.  



Q.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이고 싶은지.

혹자들은 본인의 작품을 보고 초현실주의적이라고도, 포토리얼리즘이라고도 평가한다. 부정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론 대중적인 이미지를 차용하고 복제하여 재생산한다는 의미에서 팝아트에도 근접해 있으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이면에는 직간접적으로 문학작품이나 메시지(텍스트)를 배경으로 두고 있기에 이미지 그 자체보다는 해독 내지는 해석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개념미술의 전략과 가깝다. 이는 오늘날의 ‘예술’을 이해하는 접근방식에 있어서 재료의 특수성에 따른 장르 구분이 유효한지 않은 시점에서, 시각화된 언어 또는 텍스트 자체가 이미지로 제시되는 방법론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인은 이런 특정한 장르를 통해 나의 작업이 분류되기보다는 동시대 회화,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가장 전통적 매체를 다루면서 오늘날 시각문화와 호흡을 같이하는 동시대 회화로 평가받고 싶다.  





Artist Interview

Artist. 정영한



정영한

Q. 안녕하세요 작가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그리는 화가라는 점에 관해서 스스로 동의한다.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동반한다고 보는데, 하나는 어떤 행위가 어떤 바라는 미치지 못하였을 때 즉 목적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다른 하나는 목표달성과 상관없이 그 행위에 미쳐 있을 때 가능한 것 즉 열정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나의 경우는 전자에 가깝다. 나는 나의 그리기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열심히 그리지 않으면 불안하다. 때문에 내가 열심히 그린다는 사실이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Q.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

나의 작업의 시작은 이미지를 채집하는 행위로부터 출발한다. 과거의 작가들이 현실속의 대상을 회화의 모티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면, 본인의 경우 Lost 이미지, 즉 실체가 없는 이미지들을 수집한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미지, 잡지나 신문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을 무작위로 채집하고 저장해 두었다가 작품을 할 때 화면에 하나씩 하나씩 올리는 과정을 겪는다. 마치 컴퓨터의 디지털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에서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해 투명 창에 이미지를 한 장씩 한 장 씩 중첩하여 여러 장의 레이어를 통해 하나의 화면을 구성해 내는 것처럼, 우선 바다처럼 보이는 배경을 깔고 그 위에 석상이나 대형화된 꽃, 흩날리는 꽃잎, 과일, 신문, 문자 등의 사진 이미지들을 순차적으로 재배치하여 화면을 그려낸다.




우리時代 神話 (Myth of our time) 162.1X227.3cm oil on canvas 2014년

Q. 바다 위 정물의 초현실적인 배치가 인상깊다..

자유로운 이미지의 변형을 위해 작품 속에서 돌발적으로 삽입된 꽃이나 신문, 오래된 석상과 같은 정물들은 배경이 되는 바다풍경과 무관한 서로 다른 이미지의 층위를 나타낸다. 이러한 이미지의 층위는 화면에 일종의 레이어(layer)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그려진 대상들 하나하나가 각각의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레이어 구조는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 화면에서의 이미지 창과 관련된다. 물론 디지털이미지의 편집과 변형을 위해 작업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분리하는 이미지 창과는 엄격히 구분되지만, 현대시각매체를 통한 이미지 보기의 방식을 회화라는 고유의 시각매체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작업은 화면을 층위구조로 표현함으로써 실제의 풍경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實在)가 된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실재 이미지보다 체험하는 자연을 제시하는 것으로, 화면을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 공간으로 보이도록 유도한다.





우리時代 神話 (Myth of our time) 162.1X112.1cm oil on canvas 2008년

Q. 프린트라고 해도 믿을 표현기법인 것 같은데.

의도적으로 사진과 흡사하게, 사진 이상으로 잘 그리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작업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붓질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흔히 회화에서 작가의 개성을 파악할 때 붓질이 주요한 요소가 되잖아요. 제 경우에는 화면에서 의도적으로 붓 자국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감정의 절제와 관조자의 시선을 담아냅니다. 따라서 제 작품에서 이미지들은 형상을 ‘그려낸다’라기 보다는 ‘화면에 프린트 한다’는 표현이 적합합니다. 사실 이것은 회화라는, 그리고 그려낸다는 가장 전통적인 매체와 방법을 선택하였지만 오늘날 회화가 지니는 의미는 과거의 그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의 복잡한 기술복제시대 속에서 손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주체로서 창작자 즉, 조작을 가한 주체인 화가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행위 또한 우리시대의 시대성을 위한 의도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우리時代 神話 (Myth of our time) 상세이미지

이것은 단순히 재현적인 일루전의 획득을 위해 붓질의 흔적을 지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에요. 매질의 표층을 매끄럽게 하면서 동시에 형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선도 허물어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덧칠과 중첩으로 구분될 수 있는 중심과 주변의 차이가 모호해지죠. 그리고 대상과 배경의 구분을 제거하여 마치 동시에 전사된 것 같은 효과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회화에서 캔버스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작가에 대한 정보라고 할 수 있는데, 캔버스로부터 오는 정보를 제거하면 투사된 이미지의 정보가 훨씬 강해지죠. 


이미지, 시대의 단상 시리즈 전시전경

Q. 이미지, 시대의 단상 시리즈.

최근에 제작하는 이미지, 時代의 斷想 시리즈의 작품을 살펴보면 사실적이고 재현적인 이미지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몇몇 단어들이 같은 화면 안에 공존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대상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분명한 이미지 위에 굵고 명암이나 색상을 달리하면서 선명한 글씨체로 새겨진, 제목을 가장한 추상적 단어들은 그 뒤에 배경처럼 드러나는 바다, 인형, 인물과 같은 다양한 대상들이 지닌 사물의 속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화면에서 오히려 대조(contrast)를 이룸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이미지는 그 단어에 함축된 의미와 정서를 강조해주고, 단어는 다시 이미지의 사실적 형태와 감각을 더욱 강조해주고 있다. 즉 일종의 상호 촉진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지, 時代의 斷想>이라는 연작을 하면서 본인은 신화로써의 아이콘을 그려내듯 시대의 단상을 가장 잘 함축하는 그러나 우리시대가 쉽게 정의내리지 못하는 가치들을 ‘LOST(찾아주세요)’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작품에서 ‘LOST’는 “Love Our Special Time”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며 항상 우리가 지금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그것이 무엇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갈망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이미지, 時代의 斷想>을 통해서 지금 우리의 삶의 방식에 관계된 다양한 동시대적 감수성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영한 작가

Q. 지금의 정영한 작가가 있기까지.

유년시절 막연하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시점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학창시절에 다른 과목보다 미술이 좋았고 그리는 데 있어서는 또래의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스스로 착각했던 때도 있었다. 사실상 진로가 정해진 것은 미술대학에 진학하면서 부터겠지만 평생 동안 아티스트로 살아가리라 생각한 것은 1996년 첫 개인전 때였다. 당시, 내 이름만으로 또 나의 그림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을 보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와 견주는 모습은 마치 사방에 거울이 놓인 방에서 벌거벗은 나의 몸을 보는 경험과 유사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어디 한 번 그려보자라고 생각한 것. 객기 어린 집념이 지금까지 붓을 놓지 못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정영한 작가 작업실

Q. 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나는 노력한다. 타고난 재능과 감각이 무엇이었는지 애초부터 몰랐던 것처럼 노력한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가진 기질과 장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른다. 어쩌면 외면해 왔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때문에 나에게 영감(inspiration)이라는 것이 왔을 때 그것을 겸손하고 감사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쏟아 짧지 않은 호흡과 가볍지 않은 숨결을 불어 넣으려고 노력한다. 때문에 시리즈 작품 별로 적어도 5년 이상을 매달린다. 그리고 각각의 시리즈마다 전과 후의 것에 대한 생각들을 중첩시켜 단서를 남겨 놓으려는 시도를 한다. 이렇게 나의 그리기는 예술가의 삶이라는 시리즈 그 자체로 재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노력의 결과물이다. 나의 노력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타인과 비교 할 부분은 못될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예술가로서 나 자신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이다.



Q. 쉬거나 영감을 얻고자 하실 때 무엇을 하시는지.

특별하게 좋아하거나 가리는 취향은 아니지만 클래식 음악과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작품 활동의 영감도 특별히 체험이나 신체활동을 통해 영감을 받지는 않습니다. 작품에서 자연의 풍경들이 많이 등장하기에 여행, 사진촬영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제가 아주 활동적인 사람은 아니어서요. 대부분 작품들은 현재의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다음 작품을 구상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완벽한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리허설을 거치는 것처럼 평상시에도 늘 작업에 대한 생각들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나 광고, 잡지, 인터넷 등 일상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자극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회화를 창작하는 작가로서 장르의 특성상 이미지에 의한 시각 활동에 대한 문제와 관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본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 그리고 보여진다는 것의 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오늘날 우리시대가 갖고 있는 시대적 특성과 현대인들의 시대정신을 회화적으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Q. 좋아하는 크리에이터

배움을 통한 스승보다는 그간 작가로 살아오면서 본인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거나 좋아하는 미술가는 꼽으라고 한다면 로만 오팔카, 볼프강 라이프, 그리고 이우환 이다. 나는 이러한 질문에 망설임 없이 이 세 사람을 언급하는데, 모두 나와 개인적 친분이 없고 미술 이외에는 특별한 공통분모가 없기에 인터뷰어들이 의아해 한다. 이것은 철저하게 나의 취향 문제인 듯하다.


로만 오팔카 작

폴란드 출신 화가 로만 오팔카. 나는 그의 작품이 가진 본질에 대한 집념과 도덕주의적 신념, 그리고 그것을 반영하는 연속적 작업방식을 좋아한다. 나의 그리기에 대한 집착과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분석적 접근방법 또한 이러한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볼프강 라이프 작

볼프강 라이프! 그의 색채표현과 설치방법은 감탄을 자아낸다. 연애를 하다 보면 그냥 좋은 상대가 있듯, 절제된 형식에 초월적 사고를 반영하는 볼프강 라이프의 실험적 작품은 일단 좋다는 그것이 우선이다.


이우환 선으로부터

그리고 이우환(선생님). 언젠가 나의 에세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항상 동시대와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술가로서 그의 태도를 존경한다.


Q.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이고 싶은지.

혹자들은 본인의 작품을 보고 초현실주의적이라고도, 포토리얼리즘이라고도 평가한다. 부정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론 대중적인 이미지를 차용하고 복제하여 재생산한다는 의미에서 팝아트에도 근접해 있으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이면에는 직간접적으로 문학작품이나 메시지(텍스트)를 배경으로 두고 있기에 이미지 그 자체보다는 해독 내지는 해석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개념미술의 전략과 가깝다. 이는 오늘날의 ‘예술’을 이해하는 접근방식에 있어서 재료의 특수성에 따른 장르 구분이 유효한지 않은 시점에서, 시각화된 언어 또는 텍스트 자체가 이미지로 제시되는 방법론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인은 이런 특정한 장르를 통해 나의 작업이 분류되기보다는 동시대 회화,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가장 전통적 매체를 다루면서 오늘날 시각문화와 호흡을 같이하는 동시대 회화로 평가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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